2010. 5. 1.

나홀로 정동진 일출 여행 Gangneung Jeongdongjin


2010년 1학기 개강 후 문득 일출을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겨울방학때 혼자서 일본여행을 다녀왔다는 자신감 덕분인지 "그래, 혼자서 일출을 보고 오는거야!"라고 생각하고 청량리-정동진(왕복) 기차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보름 후 정동진으로 향하는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기차 안에는 가족, 커플들로 가득차 있었다. 옆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을까 기대도 좀 됐었는데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시는 할머니가 앉으셨다. 혹시나 나처럼 혼자 여행을 가는 잘생긴 남자가 내 옆에 앉아 뭔가 알콩달콩한 인연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가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나는 정동진까지 가는 내내 아이팟으로 음악만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새벽 4시40분쯤이 되어 정동진에 도착했다. 4월3일토요일 해뜨는 시간은 6시8분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동이 틀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사람들은 역 바로 앞에 있는 휴게소에 들어가 요기를 했다. 나도 혼자서 가만히 있기는 민망해서 만두를 사먹고 이것저것 수첩에 끄적이다보니 해뜨는 시간에 다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해뜨기를 기다렸다.





 - 정동진역은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역으로 기네스북에도 올라가 있다고 한다.


일출을 기다리는 마음은 매우 두근두근 설레였다. 비록 주변에는 친구들과 함께,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설레임을 공유하고 있을 때 나는 혼자서 이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어릴적에 가족여행으로 정동진에 갔었으나 날씨가 안 좋아 해뜨는 걸 보지 못해 조금 걱정이 됬었는데 이번엔 다행스럽게도 날씨가 좋았는지 정말로 계란노른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아직 해가 떠오르기 전 아직 붉은 기운만 있다.

 - 조금씩 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 마침내 계란노른자 등장!!







그런데 해가 떠오르기 전 하늘에 붉은 기운만 있었을 땐 가슴이 두근두근 했는데 해가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하고보니 조금 재미없기도 했다. 지루한 느낌... 혼자라 그랬던걸까; 뭔가 이렇다할 감격같은건 없었다. 오히려 나 혼자 일출을 보는게 약간 쓸쓸하게도 느껴졌다. 만약 산에서 일출을 보는거였다면 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에 대한 뿌듯함이 있기 때문에 일출이 일종의 보상같이 느껴져서 기뻤을텐데, 나는 아무 고생없이 일출을 보니까 그냥 '저렇게 동그랗게 떠오르는게 참 신기하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던 것 같다. 그래... 일출은 혼자 보는게 아니였어.....


- 내가 이번 여행을 가면서 제일 걱정했던게 것(커플). 아니나다를까 정동진 가는 기차를 타면서부터 거슬리기 시작했다. 최대한 신경을 쓰지 않고 여행을 즐기려고 했는데 특히 정동진 역에서는 모두모두 커플들 뿐이라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곧 '쟤네들이 가면 얼마나 가겠어 결국 다 헤어질꺼야'라는 생각에 이르자 내 마음이 조금 평화로워졌다.





아무튼 해가 떠오르는 걸 보고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바닷가를 떠나기 시작했고 몇몇 사람들만 이미 높이 떠오른 해를 보거나 바다를 구경했다.

 - 해가 떠오른 후에 바다풍경.

그래서 나도 아침밥을 먹어야지 하고 정동진 역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정동진 인기가 점점 없어진다고 하더니 정말로 역 주변 분위기가 쌩- 했다; 한 세개 정도 있었던 기념품가게도 점포정리... 물론 나는 사람이 없어서 편하고 좋았긴 했지만 아직 사람들이 잘 몰라서 관광객이 뜸한 것과 한창 인기있던 관광지가 시들해져 가는 것은 느낌이 다르다. 하긴 정동진 역 주변에 볼게 별로 없긴 하니까 일출만 보고 떠나는게 이해가 가긴 한다. 암튼 나는 정동진에 간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초당 순두부를 먹고와라!'라는 깨알같은 조언을 남겨주신 한 선배의 말을 참고하여 초당순두부를 먹으러 식당으로 들어갔다.


 - 추운데 있다보니 뜨뜻한게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초당순두부는 처음 먹어봤는데 부두럽고 고소했다. 하지만 내가 먹은 곳은 초당순두부 맛집이 아닌 여러가지 음식을 팔고 있는 식당이어서 평범했던 맛 이었던것 같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는 정동진을 더 둘러보았다. 왜냐면................................. 나는 돌아가는 기차를 밤 10시29분 차로 예매했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아주 많았으니까! (표가 매진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T_T)  그래서 사람이 별로 없는 바닷가에서 음악 들으며 멍하게 계속 앉아 있었는데 햇살은 좋은데 바닷바람이 점점 심해져서 곧 포기했다;


 - 해변가의 흔들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

 - 세계최대의 모래시계로 1년에 한번 뒤집는다는 것 같은데 사람들 다 관심 없음. 아웃 오브 안중. 그냥 일출만 보고 떠남.


 - 해변을 걷다보면 이런 풍경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아침 먹고 바다도 둘러보고 그랬는데 아마 11시가 안됐을거다. 그래서 여기서 더이상 이러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 강릉역으로 갔다. 강릉역으로 가는 기차는 바닷가 해안길을 따라 가기 때문에 짧은 거리가 아쉬울만큼 풍경이 아주 아주 좋았다. 하지만 나는 창가쪽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진은 찍지 못했다.

강릉역에 도착해서는 슬슬 배도 고프도 점심시간이 되어 일단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역 주변에 식당이 있긴한데 사람들이 너무 없고 도무지 영업을 하고 있는건지 아닌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허름한 집들이 많이 보여 점심을 먹을 곳을 좀 더 찾아보았다. 조금 걷다보니 마트도 있고 극장도 있고 나름 번화가가 나왔다. 하지만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체인점을 가는 것은 싫어 좀 더 주변을 탐색해 보았다. 그러다가 그 주변의 초밥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손님은 별로 없었다. 그 곳 초밥은 꽤 맛있었는데 초밥 만드는 사람이 불친절했다. 딱히 손님대접을 잘 안한건 아닌데 굉장히 무뚝뚝한 느낌... 그래도 초밥이 맛있었으니 그걸로 됐긴하지만;





그런데 난 강릉역에 가면 뭔가 바로 있을 줄 알았는데 강릉역은 그냥 시내여서 여행하는 기분 전혀 안들었다.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오죽헌 가는 버스가 몇개 있었다. 그래서 일단 시간도 많겠다 오죽헌으로 향했다. 오죽헌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서 그런지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서 수학여행 간 듯한 기분도 들었고.










'아 이게 오죽헌이구나'하고 둘러보고 나니 아직도 시간이 꽤 남아있었다. 지금 돌아가기엔 좀 아까울 것 같아 또 버스를 타고 주문진항으로 고고씽. 주문진은 항구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무척 많고 여기저기서 오징어 홍어같은 것들을 말리고 있었다. 구경하는게 재밌었지만 진짜 바닷바람이 최고!!! 쎄서, 그리고 이 때쯤 난 매우 지쳐있었기 때문에 얼른 정동진역으로 돌아가서 쉬면서 기차를 기다리고 싶었다. 그래서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강릉가는 버스를 탔다. (주문진항 여기저기서 말린 건어물, 김 같은 것을 팔고 있었는데 나중에 반건조 오징어를 사올걸 후회했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급하게 돌아갔는데 시장 구경을 더 했었더라면 재밌었을 것 같다.)







- 저녁으로 먹은 회냉면. 맛없었다.

그리고 강릉역 도착. 그런데 오마이갓 이럴수가! 강릉에서 정동진 가는 기차가 밤 10시 이후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동진에서 10시29분 기차를 타야하는데... 그래서 정동진 가는 버스를 본것도 같아 버스를 찾아 헤맸다. (현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무작정 택시를 탈 순 없었고 아직 기차시간까지는 여유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의 버스는 서울같이 친절하지 않았다. 버스정류장도 도무지 이곳이 버스정류장인지 알 수 없는 곳도 있고, 버스정류장에 노선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은 곳도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정동진 가는 버스를 찾긴했다.

그런데 1시간 기다려야 오는 버스.. 이상하게 30분만에 왔다했다. 나 버스 잘못탄 것이었다. 이때가 밤 8시쯤이었나; 이미 날은 어두워지고 난 이상한 논밭에 버려져있고... 걸어도 걸어도 뭐가 나올 기미는 안보이고... 이따금씩 술에 취해보이는 아저씨만 보이고... 휴대폰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아 너무 무섭고 겁이 났다. 딱히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고(부모님에게 말하지 않고 온 여행이었음) 배터리마저 다 닳아버리면 끝날 것 같아서 전화는 사용하지 않고 계속 버스가 지나온 길을 따라 걸어갔다. 그리고 곧 파출소가 나타났다! 그리고 파출소에 들어가 나의 사정을 말했더니 친절하게도 순찰차가 들어오면 정동진까지 데려다주신다고 했다. (처음에 나이가 좀 있으신 경찰아저씨께서는 나를 매우 다그치셨다. 혼자 어떻게 여행을 왔냐, 부모님한테는 말한거냐. 아마도 나를 가출한 비행 청소년쯤으로 생각한게 아닐까 싶다. 참고로 나 쫌 어려보여요.) 암튼 거기서 음료수도 받아 마시고 아저씨들이 어떻게 혼자 여행을 할 생각을 했냐며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셨다! (내가 너무 어려보여 더 놀라신듯 했다.) 실은 이렇게 길이나 헤매는 걍 바보일 뿐인데ㅋㅋㅋ




그렇게 9시가 되서야 정동진에 도착하고 근처 카페에 들어와 쉴 수 있었다. 나는 민트 프라페라는 칵테일을 시켰는데 주인 아저씨께서 '웬 초딩처럼 보이는 애가 늦은 시간에 혼자 들어와서 칵테일을 시켜 먹는거지.' 하는 눈빛을 쏴주셨다. 하지만 내가 너무 당당하게 시켜서 그랬는지 민증검사는 하지 않았다. 후훗. 암튼 따뜻한 카페에서 기다리다 곧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안심이 들었다. 깜깜한 논바닥에 버려져있을 때만 해도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다시 엄마 아빠 얼굴을 못보게 되는건 아닐까 정말 걱정했었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 여행 후 우결에서 서현과 정용화(용서커플)가 신혼여행으로 정동진에 다녀온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우결에서 이 카페의 모습을 보았다.^_^



그리고 기차 시간이 다 되어 정동진 역으로 갔더니 아침이랑 강릉역 가기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연예인 싸인을 발견!
무지 신기했다. 덕분에 남아있던 긴장이 풀리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_^


<여행 마무리>
여행하면서 내가 지금 여행을 하는건지 미로를 찾는건지 할 정도로 계속 헤매고 있는 것만 같았는데 그래도 일출도 보고 오죽헌도 가보고 항구 구경도 하고 (무엇보다 경찰차도 타보고! ㅋㅋㅋ) 꽤 보람찬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배운 것도 있다. 여행을 하기 전에는 부모님에게 꼭 알리고 가야 한다는 것과 모르는 길은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확인을 하고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작정 여기저기 여행다니는 것도 좋지만 여자 혼자서는 위험할 수 있으니 지인들에게 나의 위치를 알려주고 휴대폰 배터리 여분을 반드시 챙기는 것이다.




강릉 여행경비
01교통청량리 - 정동진 (왕복) 기차
42,200
정동진 - 강릉 기차
 2,500
02식비만두2,500
음료수1,200
초당순두부
 6,000
과자
 1,000
광어회초밥
 15,000
회냉면
 6,000
민트프라페
 6,000
03기타오죽헌 입장료3,000
모래시계(기념품)5,000
TOTAL9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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